건축물은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물질이 만나 만들어진 결정체로, 많은 자본이 드는 만큼 여러 사람의 의견이 일치할 때만 완성되는 그 사회의 반영이자 단면이다. 그렇기에 건축물을 보면 당대 사람들이 세상을 읽는 관점, 물질을 다루는 기술 수준, 사회 경제 시스템, 인간에 대한 이해, 꿈꾸는 이상향, 생존을 위한 몸부림 등이 보인다. 이 책은 건축가 유현준이 감명받거나 영감을 얻은 30개의 건축물을 소개한다. 이 작품들을 설계한 건축가들은 수백 년 된 전통을 뒤집거나 비트는 혁명적인 생각으로 건축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저자는 이 건축물들을 통해 건축 디자인이 무엇인지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하며, “이 건축물들을 통해 독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건축물들을 소개한다.
-출처: 예스 24
평가: 가볍게 보기 좋은 교양서. 건축계의 디자인패턴 모음집. 르 코르뷔지에 입문서.
최근 셜록 현준 채널을 통해 건축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내가 건물을 짓는다면 이런 식으로 지을텐데 이 사람은 왜 이런 식으로 지었지?"라는 걸 매번 생각하게 된다는거다. 특히, 출근 지하철에서 복잡하고 좁게 만들어놓은 통로때문에 병목현상이 생길 때, '나라면 이 지하철 역을 어떻게 설계했을까? 이 건축가는 이 방식이 최선이었을까?'를 항상 생각한다. 하지만 항상 요상한 모양만 생각하다 끝난다. 당연하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내 상상력은 실현 불가능하고 매우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XX한 이슈가 있을 때, 이 건축가는 이렇게 지었어. 왜 그렇냐면 XXX했기 때문이야.' 라는 인사이트를 제공해주었다. 단순해보이는 건축 입면을 잘게 쪼개 건축가의 철학, 그렇게 설계한 이유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그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우리는 마치 건축가가 직접 나에게 이야기 해주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유현준 교수가 본인이 느꼈던 감동과 생각을 잘 녹여내기 위해 한자한자 정성스레 꾹꾹 눌러 쓴 노력이 느껴진다. 여러 작품을 다루다보니 한 건축물의 핵심적인 기능 위주로 간략하게 설명해주는데, 그 덕에 지루할 틈 없이 술술 읽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지게 된 책인듯하다.
1. 교수님의 건축 철학을 완성 시킨 위대한 작품들을 교수님의 언어로 직접 여행 시켜준 책
2. 이전 건축가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내 잡다한 상상력을 더 잡다하게 할 수 있게 해준 책
3. 셜록 현준 유튜브 단골 인사인 '르 코르뷔지에'의 위대함을 확인할 수 있는 책
마지막 3번째 의미는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그거 다 적으면 끝이 없을듯하다. 직접 읽으며 왜 저 사람이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지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문장도 어렵지 않고 내용이 깊지 않아서 누구든 가볍게 읽기 좋으니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은 읽어보길 권장한다.
격자형 도로망은 뉴욕을 비롯해 상업 도시에 주로 보이는 물류에 최적화된 도로망이다. 그리고 방사형 도로망은 파리를 비롯한 정치적인 도시에서 주로 보인다. 방사형으로 도로망이 만들어지면 중심점이 생겨나고 그곳을 차지하는 사람은 권력과 상징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52페이지 -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단순한 도로망에 이러한 철학이 숨어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내 고향 구미시 형곡동의 방사형 도로의 중심에는 도서관이 있는데 이걸 권력에 의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사견을 붙여 조금 수정하자면, ‘여기에 권력자가 있습니다’라는 것을 나타낼 때에는 방사형 도로가 매우 효과적이지만 모든 방사형 도로가 권력의 위계를 나타내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공간을 좌우대칭으로 만들면 일단 규칙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규칙은 누군가가 기획하고 만든 공간임을 암시하며, 이는 자연스럽게 어떤 권위자의 존재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이때 좌우 재칭을 나누는 축은 그 권위자의 권력을 세워주는 선이 된다.
71페이지 - 롱샹성당
법원, 학교등 다양한 공간을 보면 다들 좌우 대칭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지어 회사도 사원들이 머무는 공간은 좌우대칭이 아니지만 대표실, 부장실 등 관리자급이 머무는 공간은 좌우대칭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그 중심축에는 항상 높은 사람이 앉아있던듯 하다.
빛의 대포는 기울어졌을뿐만 아니라 길게 뽑혀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 각도로 빛이 들어오는 시간대는 아주 짧다. (중략) 이렇게 날짜, 시각, 날씨에 따라 각기 다른 빛깔의 공간이 연출된다. 세개의 빛의 대포는 외부에서 보면 기울어진 굴뚝 같은 장식적인 요소이면서 동시에 내부에서는 시시각각 바뀌는 태양의 변화를 건축 공간으로 변환시키는 장치이기도 하다.
102페이지 - 롱샹성당
르 꼬르뷔지에는 천재다. 빛은 사람이 실내 생활을 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것을 이용해 디자인을 한다는 생각을 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르 꼬르뷔지에는 이를 해냈다. 정말로 자연과 소통을 할 줄 아는 건축가다.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은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다. (중략) 두번째는 자연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테네의 원형 극장을 보면 자연의 기울어진 땅을 이용해서 극장 좌석을 만들었고, 낮은 쪽에 무대를 설치했다. (중략) 세 번째는 자연을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는 자세다. 이 경우에는 자연과 건축물 사이에 거리를 둔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정자를 지을 때 물 가운데 두는 경우가 있다. 주변 자연 경관과 건축물 사이에 빈 여백의 공간을 두기 위해서다. 그 빈 공간이 있기에 건축물과 자연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174 페이지 - 발스스파
대한민국은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조화와 화합을 중시한다. 그런데 건축에 있어서 만큼은 그런 태도는 보이지 않았던듯하다. 그동안 우리의 건축들은 자연을 철저히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그들을 인간의 편의에 맞게 바뀌도록 강요하였다. 때문에 모든 아파트 단지는 획일화되었다. 오히려 옛 조상들이 그런 점에서 더욱 지혜로웠던게 아닐까?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들과 함께 더불어가며 그들을 통해 더 영감을 받고자했던 건축을 하였다. 우리도 다시 조상들처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건축으로 돌아갈때이다. 그런데 아마… 시민단체와 입주자들 때문에 안되겠지?
철근 콘크리트와 엘리베이터의 발명과 더불어 근대 이후의 건축은 여러 층의 평면이 똑같이 반복되는 구조를 가진다. 우리 주변의 모든 상가와 아파트가 그렇다. 그렇게 똑같은 평면이 층층이 쌓인 형태를 건축가들은 ‘팬케이크 평면’이라고 폄하해서 이야기한다. (중략) 이런 공간 구성의 가장 큰 문제는 각 층에서 다른 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6층짜리 미술관 건물이 팬케이크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면 우리는 6층을 경험하고 난 후 엘리베이터나 계단실을 통해 5층으로 내려가서 전시를 구경하게 된다. (중략) 층과 층 사이의 경험이 단절된다.
236페이지 - 구겐하임 미술관
당장 우리 회사도 층별로 직원들끼리 단절되어 있다. 11층 사람들은 11층 사람들끼리, 7층 사람들은 7층 사람들끼리만 소통한다. 이런것을 보면 우리의 한옥은 정말 소통이 잘 되도록 구성 된것 같다. ‘ㄱ’ 자로 되어 있어, 서로 다른 건물에 있는 사람도 대화할 수 있으며 다른 방에 있더라도 문만 열면 대청을 통해 서로 얼굴을 확인 할 수 있다. 물론 현대에는 프라이버시와 개인 공간이 중요해면서 이런 공간이 오히려 기피되고 있지만 먼 훗날 내 자식들과 살 집을 짓게 된다면 이렇게 문만 열면 대화 가능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공중권은 토지와 건물의 상부 공간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로, 나아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연면적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는 권리다. (중략) 이런 경우 내가 지을 수 있는 29개층 높이의 연면적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는 권리가 공중권이다. (중략) 덕분에 뉴욕은 다양한 높이의 건물들이 공존하는 독특한 경관을 가지게 되었다.
246페이지 - 시티그룹 센터
조금 노후화되고 도시 계획과 다르면 때려부수고 새로 짓는 우리나라와 달리 서방의 나라들은 기존의 건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을 존중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티가 난다. 우리나라도 이제 강대국의 반열에 들어서면서 후세에도 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2-30년 뒤에 이 건물들은 지금의 노후화된 건물처럼 부숴지고 재개발될까? 아니면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고 보존되게 될까? 적어도 제도권에서 정말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에 대해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오래된 전통 건축의 입면을 보존하면서 더 좋은 도시 경관을 갖게 되는 이점이 있음을 알고 수용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마음을 버려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주변이 더 잘될 수 있는 일을 막기도 한다. 그런 마음 때문에 이 나라의 건축이 획일화 되는 것이다. 부동산의 가치는 주변이 잘될 때 더불어 올라갈 가능성이 커진다. (중략) 우리는 건축물의 가치를 좀 더 세분화시켜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도시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변화는 불가피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건물이 철거되고 새롭게 지어질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보존해야할지 잘 생각해보아야한다.
264페이지-허스트 타워
그냥 좋은 말인듯하다. 새겨두자
아름다움을 정량적으로 설명하는 개념 중 ‘프랙털 지수’라는 것이 있다. 하얀색 도화지가 있다고 치자. 그것은 완전한 규칙의 상태다. 프랙털 지수로는 1이다. 여기에 검은색 볼펜으로 낙서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불규칙성이 점점 늘어난다. 프랙털 지수가 1.1, 1.2, 1.3으로 점점 늘어난다. 그러다가 나중에 아주 새카맣게 되어서 더 이상 낙서를 할 수 없는 완전하 불규칙의 상태가 되면 프랙털 지수가 2가 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수준은 프랙털 지수 1.4정도의 적당하게 불규칙한 상태라고 한다.
352페이지 - 도미누스 와이너리
흥미로운 내용이다. 인간이 가장 아름다움을 느끼는 상태는 완벽하게 정돈된 깔끔한 상태가 아니라 약간의 불순물이 섞여있는 상태라니… 기억해두고 나중에 직접 여러 미술 작품들을 보며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은 어느정도의 불순도를 가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봐야겠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3천 세대 단지 내 거의 모든 집이 밖에서 보면 똑같아 보인다. 발코니 확장을 해서 모든 세대의 모습은 유리창 뒤로 숨어 버렸다. 그렇다 보니 각 집들은 자신만의 개성이 하나도 없다. 사람은 자신만의 개성을 가질 때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 모두 비슷하게 생긴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자존감도 없앤다. 모든 집의 모양이 똑같다 보니 자신만의 가치가 없고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자신의 집의 가치를 집값으로만 본다. 획일화되면 가치관이 정량화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368페이지 - 해비타트 67
매우 동의하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유독 부동산을 제태크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유독 심하다. 그렇다보니 건물을 지을때도 ‘그 속에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편안함을 느낄 지 고민’하기 보다는 ‘어떻게 해야 분양 시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을까’를 고려하는 것 같다. 애초에 건설사가 집을 상품으로만 여기니 어떻게든 원자재 값을 줄일 생각만 하고 그 결과로 최근의 순살자이같은 문제가 생기고 있는것이 아닐까? 이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똑같은 모양에 그저 동네와 아파트 브랜드로 가격 줄세우기를 하는 현재 부동산 시장이 개선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 좁은 서울땅에 개개인이 개성있는 집을 가지라는 말은 함부로 못하겠다. 그러니까 서울 말고 지방에서도 살 수 있는 환경을 좀 만들어주세요… 그러면 우리가 지방가서 개성있는 집 짓고 알아서 행복하게 잘 살게요.
미국과 같이 공간이 넘쳐나는 지역에서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거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예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 같은 섬나라에서는 공간이 제한적이다 보니 이동하는 시간은 적게 들지만 공간은 항상 부족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시간보다 공간이 더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되었다. 이때 좁은 공간을 실제보다 더 넓게 느끼게 하려고 시간을 지연시켜서 심리적으로 공간을 더 넓게 느껴지게끔 조경과 건축 디자인이 발전했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396페이지 - 빛의 교회
공간을 넓어보이게 하기 위해 시간을 지연시킨다는 발상은 아주 흥미로웠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적이 있다. 2022년 여름, 제주도를 방문하여 아르떼 뮤지엄을 관람했었다. 크기가 워낙 커서 거의 반나절을 구경했었는데, 관람이 끝나고 나서 밖에서 본 뮤지엄의 크기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아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빛의 교회에 적용된 시간을 지연시켜 공간을 넓게 인식시킨다는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아르떼 뮤지엄의 경우에는 매 모퉁이마다 우리의 이목을 끌 멋진 작품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구불구불한 내부 관람로를 지루함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빛의 교회의 경우, 아무것도 없는 담장만 쭈욱 볼뿐이다. 이래서는 사용자들에게 공간을 넓게 느끼게 할 수는 있으나 동시에 불쾌함만 더 느끼게 하는 꼴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건축가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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